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외모'와 '나이'에 민감하게 반응해 온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단정하고 예쁜 외모, 어려 보이는 얼굴, 젊은 나이 등은 단순히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사회적 자산처럼 여겨져 왔다. 외모는 취업, 결혼,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기준이 되었고, 나이는 위계질서와 존중의 기준이자 '가능성'의 척도로 작용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이와 같은 고정관념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변화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미디어, SNS, 글로벌 문화의 유입, 그리고 청년 세대에 의식의 전환이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쁘면 취업도 잘 된다', '관리하는 것도 능력이다'라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통용될 정도로 외모는 능력의 일부로 간주되어 온 이제까지의 한국. 특히 여성에게는 '하얗고 마른 몸매', '작고 귀여운 얼굴' 등의 특정한 미적 기준이 주어졌고, 남성에게는 '키가 크고 탄탄한 체형'이 미덕으로 여겨져 왔으며 이로 인한 성형수술, 다이어트, 피부관리 등 외모를 개선하거나 유지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비용 또한 소모가 되어왔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점차 변화하고 있다.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트렌드나, 개성을 중시하는 패션 스타일이 주목받고 있고, 절대적인 미의 기준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SNS를 통해 다양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공유하면서, '생긴 대로 살자', '자연스러운 게 멋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MZ세대를 중심으로 '외모보다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자존감 중심의 가치관이 부상 중이다.
또한 한국 사회는 유독 '나이'에 민감한 부분도 현실이다. 누가 몇 년생인지, 나이가 몇 살인지에 따라 말투가 달라지고, 상하 관계가 자동으로 설정된다. 심지어 같은 학년이어도 빠른 생일이면 '형' 또는 '언니'가 된다. 직장에서는 나이가 경력이나 실력보다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하고, 젊은 나이에 승진하면 '너무 이르다'는 시선을 받기도 한다. 반대로 중장년층은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는 말로 정체성과 자율성을 제약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40대에 유튜버로 데뷔해 성공하는 사례, 60대에 창업해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사람, 20대에 과감하게 퇴사하고 여행하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러한 현실들은 '정해진 나이대의 삶'이라는 고정관념을 허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일본과 미국에서는 나이를 업무 능력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 문화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으며, 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도 이제서야 그 영향을 받아가고 있다. 실력 중심의 사회로 변화하면서, '나이에 맞는 삶'보다 '자신에게 맞는 삶'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나답게 살기'라는 키워드가 있다. 젊다고 해서 무조건 야망과 도전을 강요받지 않으며,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고 있다. '남이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닌 '내가 만족하는 모습'을 추구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이는 소비 트렌드에도 반영된다. 색조 화장품보다 스킨케어 중심의 '자기만족형 소비', 고가 명품보다 내 스타일을 살리는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인 만족도) 중심 패션'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여전히 외모와 나이에 대한 기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기업 채용에서 프로필 사진을 요구하거나, 면접 시 외모 평가가 개입되는 경우도 있고, 하물며 상당수의 아르바이트 공고에 면접 특이사항에도 '용모 단정'이라는 문구가 아직까지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제도적인 개선뿐만 아니라 인식의 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 교육과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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